미국 수출규제 3년 이후, 중국 반도체는 정말 무너졌나?

미국의 규제는 중국 반도체를 멈추게 하지 못했다.
다만 더 비싸고, 더 느리고, 더 어려운 길로 밀어 넣었다.

2022년 10월 미국이 중국을 겨냥한 고강도 반도체 수출규제를 발표한 이후 약 3년 10개월이 지났다. 당시에는 첨단 반도체와 제조장비 공급이 차단되면 중국 반도체 산업이 빠르게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결과는 ‘중국 반도체의 붕괴’라는 단순한 표현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중국은 최첨단 인공지능 반도체와 극자외선 노광장비, 고대역폭메모리 분야에서 분명한 제약을 받고 있다. 반면 화웨이와 SMIC는 미국의 규제 아래에서도 7나노급 반도체 생산 가능성을 보여줬고, 중국은 성숙 공정 반도체와 장비 국산화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결국 미국의 반도체 수출규제는 중국 반도체 산업을 무너뜨렸다기보다, 첨단 기술에 도달하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증가시킨 정책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미국은 왜 중국 반도체를 규제했을까?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은 2022년 10월 7일 중국의 첨단 반도체 구매와 생산 능력을 제한하는 대규모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규제 대상에는 고성능 인공지능 반도체와 슈퍼컴퓨터 관련 제품, 첨단 반도체 제조장비와 관련 기술이 포함됐다. 미국산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해외에서 생산한 일부 반도체까지 통제할 수 있도록 해외직접제품규칙의 적용 범위도 확대했다.

미국 상무부가 당시 발표한 규정에는 중국 내 특정 반도체 생산시설에 사용되는 장비와 기술을 허가 대상으로 지정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주요 기준은 16나노 또는 14나노 이하 비메모리 반도체, 18나노 하프피치 이하 D램, 128단 이상의 낸드플래시 생산시설이었다.

미국인이 중국의 첨단 반도체 생산시설 개발과 유지에 참여하는 행위도 제한됐다. 이에 따라 중국 기업은 장비를 확보하더라도 설치와 유지보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기술 지원을 안정적으로 받기 어려워졌다. 미국의 규제가 단순한 제품 수출 금지를 넘어 중국의 첨단 반도체 생산 생태계 전체를 겨냥한 이유다.

수출규제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규제는 2022년 조치로 끝나지 않았다.

2023년 10월 미국 상무부는 기존 규정을 다시 보완했다. 규제 기준보다 성능을 낮춘 중국 전용 인공지능 반도체를 출시해 통제를 우회하는 방식을 차단하기 위해 성능 밀도 기준을 추가하고, 적용 국가와 우회 수출 관리 범위를 확대했다.

미국 기업이 중국의 첨단 반도체 생산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미국인에 대한 제한도 더욱 구체화됐다. 반도체 제조장비에 대한 허가 요건 역시 추가 장비와 국가로 확대됐다.

2024년 12월에는 규제 범위가 한층 더 넓어졌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은 24개 유형의 반도체 제조장비와 3개 유형의 관련 소프트웨어를 새롭게 통제하고, 인공지능 반도체의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 즉 HBM도 규제 대상에 포함했다.

식각, 증착, 노광, 이온주입, 열처리, 세정, 검사와 계측 장비가 통제 범위에 들어갔으며, 중국의 반도체 생산시설과 장비업체, 투자회사 등 140개 기업 및 기관이 수출통제 명단에 추가됐다.

이는 미국의 목표가 특정 반도체 제품 몇 개를 차단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도체 설계부터 장비, 생산, 메모리, 인공지능 데이터센터까지 이어지는 중국의 첨단 반도체 공급망 전체를 압박하는 전략에 가깝다.

중국 반도체가 실제로 타격받은 분야

미국의 수출규제는 중국 반도체 산업에 분명한 부담을 주고 있다. 특히 최첨단 공정에서 그 영향이 크게 나타난다.

중국 기업은 현재 최첨단 반도체를 효율적으로 양산하는 데 필요한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EUV 장비는 네덜란드 ASML이 사실상 유일하게 상용 공급하고 있으며, 오늘날의 첨단 로직 반도체를 대량 생산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ASML의 2025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회사는 한 해 동안 총 535대의 시스템을 판매했다. 이 가운데 EUV 노광장비는 48대였으며, 연구개발비로만 47억 유로를 투입했다. 이는 중국 기업이 단기간에 노광장비의 성능뿐 아니라 부품과 소프트웨어, 유지보수, 공정 경험까지 모두 따라잡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첨단 반도체는 회로 선폭을 줄이는 기술 하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노광과 식각, 증착, 검사, 계측, 소재, 설계 소프트웨어와 첨단 패키징이 동시에 뒷받침돼야 한다.

장비 시제품을 개발하는 것과 실제 생산라인에서 장기간 높은 가동률과 수율을 유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중국이 일부 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곧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를 저렴하게 대량 생산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화웨이와 SMIC의 7나노가 보여준 반전

중국 반도체 산업이 완전히 붕괴하지 않았다는 대표적인 사례는 화웨이의 메이트 60 프로다.

2023년 출시된 이 스마트폰에는 화웨이 계열 하이실리콘이 설계한 기린 9000S가 탑재됐다. 반도체 분석업체 테크인사이트는 제품을 분해한 결과, 해당 반도체가 중국 파운드리 SMIC의 2세대 7나노 공정인 N+2 기술로 생산됐다고 분석했다.

테크인사이트는 이 공정을 중국 파운드리가 EUV 노광장비 없이 상용 시스템반도체에 적용한 가장 진보된 사례로 평가했다.

이는 미국의 규제가 중국의 반도체 개발 자체를 완전히 중단시키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다만 중국이 7나노급 반도체를 생산했다는 사실만으로 세계 최첨단 기술을 따라잡았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EUV 없이 DUV 장비의 다중 패터닝을 활용하면 공정 단계가 늘어나고 생산시간과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

ASML도 최신 연차보고서에서 DUV 다중 패터닝은 복잡한 회로를 여러 번 나눠 노광해야 하지만, EUV는 핵심 회로를 더 적은 단계로 구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이 많아질수록 식각과 증착 등 추가 작업도 증가하기 때문에 생산성과 원가 측면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따라서 화웨이의 7나노 반도체는 중국의 기술적 성과인 동시에 중국 반도체가 현재 안고 있는 생산비용과 수율의 한계를 함께 보여준 사례다.

중국은 최첨단 반도체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미국 수출규제의 효과를 평가할 때 가장 쉽게 놓치는 부분은 세계 반도체 시장이 인공지능용 최첨단 반도체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동차와 가전제품, 산업용 기계, 의료기기, 통신장비, 전력관리장치와 각종 센서에는 28나노 이상의 성숙 공정 반도체가 폭넓게 사용된다.

중국은 첨단 공정에서는 제약을 받고 있지만, 성숙 공정 분야에서는 생산능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이 2024년 발표한 성숙 공정 반도체 공급망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의 약 절반은 자사 제품에 중국 파운드리가 생산한 반도체가 포함됐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응답 기업이 제출한 자료를 기준으로 보면 중국산 반도체가 포함된 제품은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미국 상무부는 중국의 생산능력 확대가 이미 가격 하락 압력을 만들고 있으며, 미국 반도체 공급업체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중국 반도체 산업을 최첨단 공정의 성패만으로 평가하면 안 되는 이유다.

중국이 성숙 공정 반도체를 대규모로 생산해 낮은 가격에 공급할 경우, 자동차와 가전, 산업용 반도체 시장에서는 오히려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될 수 있다.

수출규제가 중국의 국산화를 촉진했다

미국이 규제를 강화할수록 중국 정부와 기업은 반도체 자립을 선택사항이 아닌 생존 문제로 받아들이게 됐다.

중국은 반도체 설계뿐 아니라 제조장비와 소재, 부품, 패키징, 설계 소프트웨어까지 공급망 전반의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다.

과거에는 성능과 생산성이 검증된 해외 장비를 구매하는 것이 중국 반도체 기업에도 가장 경제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해외 장비의 구매와 유지보수가 불확실해지면서 성능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중국산 장비를 도입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 과정에서 중국 장비업체는 자국 반도체 생산시설을 통해 장비를 시험하고 문제점을 개선하며 실제 생산 경험을 축적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비용이 증가하고 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장기간 이어지면 중국 기업이 기술과 고객, 생산 데이터를 동시에 확보하는 결과로 연결될 수 있다.

미국의 수출규제가 중국의 기술 발전 속도를 늦추는 동시에 중국의 독자적인 반도체 생태계 구축을 촉진하는 역설적인 효과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중국 반도체는 정말 무너졌나?

결론부터 말하면 중국 반도체 산업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미국의 수출규제가 실패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중국은 최첨단 인공지능 반도체와 HBM, EUV 노광장비, 고성능 반도체 제조장비 분야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를 안정적인 수율과 가격으로 대량 생산하는 능력에서도 미국과 대만, 한국, 네덜란드, 일본을 중심으로 형성된 기존 공급망을 대체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7나노급 시스템반도체 생산 가능성을 보여줬으며, 성숙 공정 반도체와 제조장비 국산화 분야에서는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수출규제 이후의 상황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미국은 중국 반도체 산업을 붕괴시키지는 못했지만, 중국이 최첨단 기술에 도달하는 비용과 시간을 크게 증가시켰다.

중국은 규제를 계기로 자체 공급망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장비 국산화와 일부 공정 개발에 성공하는 것과 경제성이 확보된 최첨단 반도체를 대량 생산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앞으로 승부를 가를 네 가지 변수

첫 번째는 중국산 반도체 제조장비의 양산 안정성이다.

시제품 제작이나 연구개발 성과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반도체 공장에서 장비가 멈추지 않고 작동하면서 높은 수율을 유지할 수 있느냐다.

두 번째는 인공지능 반도체와 HBM 공급능력이다.

생성형 인공지능 경쟁에서는 연산 반도체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대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HBM과 첨단 패키징 기술이 함께 필요하다. 미국이 2024년 규제에 HBM을 포함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세 번째는 성숙 공정 반도체의 공급과잉 가능성이다.

중국이 대규모 생산능력을 바탕으로 저가 반도체를 공급하면 자동차와 가전, 산업용 반도체 시장의 가격 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 첨단 반도체에서는 미국이 우위를 지키더라도 범용 반도체에서는 중국이 시장 지배력을 넓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네 번째는 미국 동맹국의 협조 수준이다.

반도체 장비와 소재 공급망은 미국 한 국가만으로 통제하기 어렵다. 네덜란드와 일본, 한국, 대만 등 주요 반도체 국가와 기업의 정책이 규제의 실질적인 효과를 좌우한다.

다음에 지켜볼 포인트

  • 중국산 노광·식각·증착 장비가 실제 양산라인에서 어느 수준의 수율을 확보하는지
  • 화웨이의 차세대 스마트폰과 인공지능 반도체에 어떤 공정이 적용되는지
  • 중국 기업이 HBM과 첨단 패키징 기술의 격차를 얼마나 줄이는지
  • 중국의 성숙 공정 증설이 글로벌 반도체 가격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 미국이 중국의 제3국 우회 조달을 막기 위해 규제를 추가로 확대하는지

마무리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규제는 중국 산업을 단기간에 붕괴시키기 위한 정책이라기보다, 중국이 첨단 인공지능과 군사기술에 필요한 반도체를 확보하는 속도를 늦추기 위한 정책에 가깝다.

이 기준으로 보면 미국의 규제는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두고 있다. 중국은 최첨단 제조장비와 고성능 반도체를 확보하기 위해 이전보다 훨씬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

그러나 중국 반도체 산업 전체가 무너졌다고 판단하는 것은 현실과 거리가 있다. 중국은 제한된 장비를 활용한 첨단 공정 개발을 계속하고 있으며, 성숙 공정과 장비 국산화에서는 오히려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결국 미중 반도체 경쟁은 어느 한쪽의 단기적인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낮다.

미국은 중국의 기술 발전 속도를 늦추려 하고, 중국은 거대한 내수시장과 정부 지원을 이용해 독자적인 공급망을 구축하려 한다.

앞으로 중요한 질문은 중국 반도체가 살아남느냐가 아니다.

중국이 높은 생산비용과 낮은 수율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최첨단 반도체를 경제적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느냐가 진짜 경쟁의 핵심이다.

댓글 남기기